테무진to the칸(17) 배신의 계절
2011.06.08.수요일
필독
1
(전편에 이어) 예수겐에게 남편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정황을 보아하건데 없었을 것 같지만, 있었다면 대학살 때 죽었을 것이다. 예수겐의 아버지 예케 체렌도 반란을 주도하다가 죽은 게 분명해 보인다. 뭐 어차피 수레 굴대보다 크면 죄다 죽어야 했으니…
테무진은 여자에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여성을 전리품으로 차지하는 일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다. 쉴드치는 게 아니라 정말이다. 벨구테이만 하더라도 단 한 번의 전투에서 최소 십수 명의 여성을 손에 넣은 적이 있다. 테무진에겐 여성을 약탈해 자신의 게르에 집어넣을 기회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에게 아내는 보르테 한 명 뿐이었다.
테무진이 보르테를 정말로 사랑해서 나름의 지조를 지켰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보르테도 보통 여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의 눈치를 봤을 수도 있고. 어쨌든 그 시대의 권력자가 한 명의 아내만을 바라보고 사는 건 무척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테무진도 수컷이다. 예수겐은 인간적으로 너무 예뻤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차지할 권한이 있었다. 테무진은 이번엔 욕구를 참지 않았다. 그는, 기록에 따르면, 예수겐을 “취했다”. 데리고 잤다는 얘기다. 당시의 관습상 결혼과 겁탈의 중간 쯤 되는 행위였다.
한편 예수겐의 입장이 좋을 리는 없었다. 동포들이 학살당하고 자신의 나라가 사라졌다. 아버지도 죽었다. 그 상황에서 가장 증오해야 마땅한 원수의 손에 떨어진 것이다. 웬만한 사람들 같으면 공포와 혐오감에 정신을 못 차릴 상황이었다. 그러나 예수겐은 침착하고 영리한 여자였다.
예수겐은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최대한 불행을 줄이는 방법이 뭔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예수겐에게는 언니가 하나 있었다. 마지막 남은 가족인 언니라도 살려야 한다. 함께 살 수 있으면 더 다행이다. 예수겐은 테무진과 부부가 되자마자 ‘공사’에 들어갔다.
“칸께서는 ‘저 같은 것조차 사람으로 여겨’ 돌봐주시는 너그러운 분이십니다…”
예수겐은 먼저 자신을 최대한 낮추면서 테무진의 심기를 살핀 후 본론에 들어갔다.
“… 그런데 갑자기 언니 생각이 나네요. 언니는 이름이 ‘예수이’인데, 저보다 훨씬 뛰어난 여자예요. 외모로 보나 생각하는 걸로 보나…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이 난리통에 어디에 있는지 참 걱정되네요. 에휴…”
예수겐의 외모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테무진에게는 제대로 된 떡밥이었다.
“아니, 너보다 예쁘다고?”
“그럼요.”
“정말?”
“그렇다니까요.”
“정말로 너보다 예쁜 여자가 있다면 당장 찾아야겠다!”
에수겐은 영리하게도 마치 테무진의 욕망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처럼 반응했다.
“정말 언니를 찾으시려고요? 저는 언니를 다시 볼 수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겠어요. 언니에게 ‘제 자리’를 양보하겠습니다!”
다시 말해 두 번째 부인의 자리를 언니에게 내놓고, 자신은 셋째부인이 되겠다는 뜻이었다. 역시 현명하다. 본부인도 아닌 마당에 둘째 셋째가 무슨 차이가 있는가. 더군다나 바로 윗사람이 자신의 친언니라면.
테무진의 군사들은 (아마도 예수겐이 예측한) 예상 도주로를 따라 주변을 샅샅이 수색했다. 인상착의와 행색은 예수겐이 알려주었을 것이다. 예수이는 마침 신랑과 함께 숲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던 참에 딱 걸리고 말았다. 예케 체렌의 사위는 학살의 아수라장 속에서 운 좋게 아내를 데리고 탈출했던 것이다. 신랑은 숲속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지만, 예수이는 붙들리고 말았다.
테무진 앞에 끌려온 예수이… 정말로 예수겐보다 더 아름다운 절세미녀가 아닌가. 설마 했던 테무진은 놀랄 수밖에 없었으리라.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던 예수이도 테무진 옆에 앉아 있는 동생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예수겐은 언니의 손을 잡아끌어 자신의 자리에 앉혔다. 이제 언니는 테무진의 둘째부인이라는 뜻이었다. 사료에 기록되어있지는 않지만, 당연히 상황설명을 해주었을 것이다. 어차피 이렇게 되었으니 자매가 함께 살게 된 것에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예전 기사에 누차 설명했지만, 초원에선 남녀가 서로 피가 섞이지 않은 한 누구와도 결혼할 수 있다. 자매가 한 남자와 결혼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참, 예수이의 남편이 좀 안됐긴 하지만 예수겐 입장에선 형부보다 친언니의 신변이 훨씬 중요했다.
그러나 예수이의 남편은 아내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2
테무진의 군대가 한창 전리품을 거두고 있을 때였다. 테무진은 예수겐과 예수이를 양 옆에 앉히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자신이 죽인 적의 아름다운 두 딸을 동시에 소유한 정복자의 쾌감은 실로 짜릿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이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 게 아닌가? 테무진은 예수이에게 한숨을 쉰 이유를 묻지 않았다. 짚이는 데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이가 자기 신랑의 모습을 봤구나!’
글타. 예수이의 남편은 은근슬쩍 전투와 학살이 벌어진 곳으로 숨어들어와 있었다. 어차피 타타르 남자는 다 죽었다. 내가 여기서 태연히 돌아다니면, 누가 날 타타르 전사로 여기겠는가? 그는 사랑하는 아내 예수이가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곳까지 갔다. 테무진 오르도의 중심까지 들어간 것이다.
‘누가 예수이의 신랑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도 방법이 있었다. 테무진은 ‘네 마리의 개’와 ‘네 마리의 준마’를 불러 명령했다.
“자네들, 지금 날 위해 해줘야 할 일이 있네. 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아이막’ 별로 집합해 서 있으라고 하게. 신속하게 집합시켜야 하네.”
‘아이막’이란 ‘부락’을 뜻한다. 이 부락을 ‘마을’로 생각하면 안 된다. 마을은 다분히 공간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유목민들에겐 고정된 공간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공동체가 없을 순 없다. 함께 가축을 치고 물자를 공유하는 기본적인 단위가 있게 마련이다. 이걸 아이막이라고 한다. 물론 농경문명으로 치면 마을에 해당될 것이다. 사전적으로는 아이막을 ‘부족’을 가리키는 몽골-투르크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중대… 아니 아이막 별로 해쳐모여!”
병사들이다 보니 이런 명령에 익숙할 수밖에. 게다가 여덟 명의 대장군이 움직이니 금세 정리가 되었다. 다들 아이막 별로 모여 섰는데, 그 중에 혼자 외롭게 서 있는 남자가 있었으니… 당연히 예수이의 신랑이었다.
예수이의 신랑이 테무진 앞에 끌려왔다. 과연 칸의 사위이자 미녀의 남편답게, 눈에 띄게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게다가 당당했다. 그는 살려달라고 빌기는커녕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담담히 죽음을 기다렸다.
예수이, 예수겐 자매의 미모에 푹 빠져 있던 테무진은 평소에 보이지 않던 모습을 보이게 된다. 질투심에 휩싸인 것이다. 테무진은 예수이가 아직도 전남편을 마음에 품고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테무진은 전남편과 달리 평범한 얼굴에 키는 보통이었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다.
테무진은 자존감이 없는 인물도 아니었고, 힘들게 살아왔지만 콤플렉스도 전혀 없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잘 이해하고, 아랫사람에게도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존감이 없는 사람은 이렇게 겸손할 수가 없다. 우아하고 절제된 품성의 남자다. 그렇지만 갓 차지한 미녀 앞에서는 테무진도 생물학적 본능에 사로잡힌 수컷의 모습을 보이고 만다. 글타… 강인한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강인함을 유지할 수는 없는 법이다.
잘난 엄친아 녀석이 용감한 모습까지 보이자, 오히려 절대적으로 유리한 처지였던 테무진이 오바해서 성을 냈다.
“나한테 ‘역심’을 품은 게 분명하다. 한시라도 빨리 죽여 없애야 한다. 뭣들 하느냐! 내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번역하면 예수이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끌고 가라! 빨리 죽여 버려라!”
이렇게 해서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한 예수이는 눈앞에서 사랑하는 배우자를 잃는 비극까지 겪고 만다. 이 일이 미안했던지, 이후 테무진은 평생 둘째부인 예수이를 존중하며 정성껏 대했다. 예수이 자체가 매우 뛰어난 사람이기도 했다. 예수이는 몽골제국의 최고 브레인 중 하나였고, 테무진은 그녀의 의견을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전쟁에 나설 때 동행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3
적을 죽이고 그의 두 딸을 동시에 차지하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갓 약탈한 여자의 남편까지 (그것도 당사자의 눈앞에서) 죽인 테무진. 달란 네무르게스에서 보인 테무진의 모습은 나쁜 남자의 전형이다.
예수이, 예수겐 자매와 결혼(물론 강제결혼)한 일은 테무진의 일생에서 매우 특이한 경우다. 보르테는 논외로 두고, 테무진이 수컷의 본능에 따라 여자에게 집착한 적은 이때가 유일하다. 테무진은 평생 열 명이 안 되는 부인을 두게 되는데, 데릴사위가 되어 결혼한 본부인 보르테와 폭력적으로 손에 넣은 예수이 자매를 제외하면 모두 정치적인 정략결혼이었다.
테무진이 보르테를 어지간히 사랑하긴 했던 모양이다. 테무진이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보르테와 부부생활-걍 간단히 말하면 섹스-를 한 역사적 증거가 있다(이 썰은 나중에 자세히 풀 것이다.). 말이 중년이지, 당시 기준으로는 둘 다 노인이다. 테무진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육체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는데… 역시 사랑하지 않으면 있기 힘든 일이다. 뭐, 테무진이 시쳇말로 ‘의무방어전’을 치렀을 수도 있겠지만, 의무방어전이라는 것도 배우자의 욕구를 이해하고 존중하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다.
어쨌든 테무진의 여성관이 매우 평화적이었다는 건 확실하다. 예를 들어 테무진의 부하 중 하나인 코르치는 최소 60명 이상의 여성과 약탈혼을 했다. 확실히 테무진은 마초적인 ‘콜렉터’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예수이 자매에게 한 짓은 분명 마초의 그것이었다(정말 예쁘긴 예뻤나 보다.).
그래서 몽골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에게 <자매 쓰리섬 결혼사건>은 상당히 중요한 이슈다. 아무리 봐도 테무진이 평생 유지해온 품성과 태도와는 정 반대다. 잭 웨더포드는 아예 이렇게 설명한다 : 테무진은 타타르 생존자들이 평등한 구성원이 되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모범사례로 예수이 자매와 결혼했다는 거다. 유원수 교수님과 함께 국내에서 몽골사-중앙아시아 유목민사 최고의 권위자인 김호동 교수도 비슷한 입장이다.
난 그건 아니라고 본다. 예수이 자매와 약탈혼을 한 동기는 남성의 욕구가 맞다. 다만 테무진의 성격상 두 사람과의 결혼생활을 통해, 타타르 여인을 아내로서 존중하는 모습을 백성들에게 보여주며 사회통합을 강조했을 것이다.
반면 테무진을 아드레날린과 테스토스테론으로 가득 찬 전투적 남성으로 묘사하고자 하는 대중적 콘텐츠 생산자들에게는 신나는 이야깃거리다. 이 부류의 지식인들이 반드시 빠트리지 않고 소개하는 대목이 있다. 라시드 앗 딘이 저술한 <집사>중 <칭기스칸기>에 등장하는 일화다.
<br />하루는 테무진이 네 마리 준마 중 하나이자 친한 친구인 보르추에게 물었다.<br /><br />“어이 보르추, 남자에게 있어 최고의 즐거움은 뭐라고 생각하나?”<br /><br />“역시 남자의 스포츠는 매사냥 아니겠습니까? 잿빛 매를 자랑스럽게 어깨에 싣고 다녀야죠. 겨울에 내 매로 사냥감을 잡게 하는게 진짜 맛이죠…”<br /><br />몽골초원에서는 겨울에 가축을 도살하지 않았다. 따라서 겨울엔 사냥으로 육류를 충당해야 했다.<br /><br />“… 그리고 비싼 자가용 살찌고 좋은 말을 몰아야 폼이 나죠. 에 또… 봄에 머리가 푸른 새(아마도 철새인 듯하다.)를 사냥하는 것도 빠질 수 없죠. 그리고 이왕이면 옷도 좋은 걸 입고 다니고요.”<br /><br />테무진은 마침 옆에 있던 보로쿨(역시 네 마리 준마 중 하나)에게 물었다.<br /><br />“넌 어떻게 생각하냐?”<br /><br />보로쿨도 역시 매사냥을 최고로 쳤으나, 보르추와는 취향이 조금 달랐다.<br /><br />“머리가 푸른 새라니, 거 참 시시하게… 역시 내 매가 공중에서 붉은 꿩을 낚아채는 모습을 볼 때가 최고 아니겠습니까?”<br /><br /><br /><br />테무진은 마지막으로 네 마리 개 중 하나인 쿠빌라이에게 물었다. 쿠빌라이의 대답은 성실한 범재답다.<br /><br />“아 뭐 역시… 저도 매사냥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br /><br />테무진은 드디어 준비한 대답을 내놓는다.<br /><br />“짜식들, 너네가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매사냥이 뭐냐, 매사냥이. 하여간 사이즈들이 그렇게 작아서 원…<br /><br />남자의 쾌락은 적을 분쇄하고 승리를 거두는 거지. 적을 송두리째 들어내서 그가 가진 모든 걸 빼앗는 거야. 그의 부인들이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 자식들이 엉엉 우는 모습을 보는 게 남자의 즐거움이야. 적의 살찐 말을 내가 타는 건 기본이고… 그의 부인들을 내 게르로 끌고와 그들의 가슴과 배를 잠옷과 담요로 삼는 것, 그들의 장밋빛 뺨을 바라보며 입맞춤을 하는 것, 대추처럼 빨갛고 감미로운 입술을 빠는 게 진정 남자의 즐거움이다.”
잭 웨더포드는 이 일화가 라시드 앗 딘 꾸며낸 소설이라고 못을 박는다. 물론 웨더포드의 의견엔 충분한 근거가 있다. 라시드 앗 딘은 테무진을 멋진 사나이로 꾸미기 위해 사실을 왜곡한 전력이 많다.
예를 들어 테무진은 13쿠리엔 전투에서 자무카에게 지는데, 라시드 앗 딘은 테무진이 이긴 걸로 바꿔놓았다. 헐룬과 보르테 등 여성의 조언을 구하는 대목, 눈물을 흘렸던 장면 등은 아예 쓰지도 않았다. 위대한 군주에 대한 예우 차원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 라시드 앗 딘은 몽골인이 지배하는 조정의 대신이었다. 내심 지배자들의 입맛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작 몽골 왕족들은 원하지도 않는데 혼자 오바한 부분이 많다.
라시드 앗 딘이 저지른 오바의 핵심적인 문제는 그가 멋진 사나이를 자신의 문화, 즉 아랍식으로 해석했다는 거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전해주는 듯한 비현실적은 능력으로 적을 쓸어없애는 남자, 패배한 적에게 자비를 모르는 남자, 승리의 대가로 여자를 유린하며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남자…
라시드 앗 딘은 자무카가 치노스족 70명을 가마솥에 삶아죽인 일을 테무진이 했다고 바꿔놓았다. 테무진이 이런 굴욕을 당해서는 안 되었다고 생각했다면 그냥 자기 책에 해당 부분을 기록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 짓을 테무진이 했다고 뒤바꿔놓은 건, 그게 멋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라시드 앗 딘은 테무진의 부인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고 했다(다른 책에서는 500명이라고 적어놓기도 했다.). 그래놓고는 “너무 많아서 일일히 기록할 수 없으니 중요한 부인들만 소개하는 바이다.”라며 몇 명만 소개하고 설명을 달아놓았다. 이쯤되면 독자들도 눈치 챘겠지만, 실제로는 이 몇명이 테무진의 부인 전부다(물론 라시드 앗 딘은 굳이 나서서 대신 금칠을 해줄 필요가 없는 부분에 대해선 구체적인 연대까지 제시하며 최대한 정확히 기술하려고 노력했다.).
그렇다면 라시드 앗 딘은 과연 뻥을 친 걸까? 뻥이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나는 테무진이 <남자의 쾌락> 발언을 실제로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이 자매의 경우처럼 사람이란 언제나 일관정을 유지할 수 없는 법이다. 테무진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쟁과 약탈 등 폭력을 행사하며 산 남자다. 폭력과 지배의 잔인한 쾌감에 젖는 순간이 전혀 없었을까? 나는 자주 있었으리라고 확신한다.
중요한 점은 테무진이 언제나 착한 군주였다는 게 아니라, 평소 유지하던 정책과 성격으로 돌아올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테무진은 성자가 아니라 전사다. 전사는 폭력을 참지 않는다. 하지만 테무진은 고민할 줄 아는 성격과 절제력을 가진 전사였다. 그는 일생을 통해 평화와 통합을 추구하고자 노력했다.
평화와 통합이라… 어째 너무 낭만적으로 보인다. 설마 만화에 나오는 영웅처럼 테무진도 그런 생각을 했을라구. 이제 이 이야기를 해 보자.
4
달란 네무르게스 전투에 즈음하여 테무진은 최초로,
’모전 벽의 사람들’
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다. 게르의 천막을 모전, 즉 펠트로 만든다. 다시 말해 ‘게르에 사는 유목민’ 전부를 뜻한다. 삶의 방식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요즘 말로 하면 ‘문화공동체’로 정확히 번역된다.
그 전까지 유목민들은 혈통공동체로 집단을 구성했다. 분명히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똑같이 초원에서 사는 사람들인데, 폭력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우리 편과 쟤네 편의 구분이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테무진은 세상에 없던 새로운 민족을 만들려고 했다. 부족과 씨족, 혈족이 아니라 국가적 단위인 ‘민족’ 말이다. 당시 초원에는 인종적으로 보면 몽골족(부족 이름이 아니라 인종적 개념인 ‘몽골리안’을 뜻한다.), 몽골리안의 지파라고 볼 수 있는 타타르족, 독립종족이라고 봐야 마땅한 투르크족, 중앙아시아 계열인 위구르족 등 다양한 인종 풀이 뒤섞여 있었다.
이 종족들이 이리저리 뒤섞이면서 부족과 씨족을 이룬다. 가장 작은 단위인 혈족은 대략 사촌~육촌까지를 포함하는 울트라 대가족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그러니 초원은 통일이 될래야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실상 초원은 분열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분열이란, 원래 일체감을 느끼는 하나의 무리에 있던 사람들이 서로 적대하거나 결속이 약해져 쪼개져 나간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통일된 상태였던 적이 없는데, 어떻게 분열할 수 있는가. 당시의 초원이 ‘분열’되었다고 하는 건, 지금 우리가 씁쓸하게 고개를 흔들며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200개가 넘는 나라로 분열되어 있어…>하는 거나 같다. 예를 들어, 남북한이 합친다면 이는 당연히 통일이다. 우리는 원래 한 나라였고, 지금은 ‘분단’되어있으니까.
물론 테무진이 속한 보르지긴 씨족의 조상 중에 초원을 거의 통일할 뻔한 카불 칸이 있었긴 하다. 그런데 이런 통일은 진정한 통일이 아니다. 공동체적 통합이 아니란 얘기다. 몽골족이 약한 부족과 씨족들을 부하나 노예로 삼는 거다. 이건 통합이 아니라 ‘지배’다.
사실 대한민국도 단일민족 국가는 아니다. 신생아의 엉덩이이 몽고반점이 찍히는 등 시베리아계 몽골리안의 비율이 높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다양한 인종이 흘러들어왔다. 북방 유목인종과 아랍인, 지나인(중국 인종),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태평양 인종인 폴리네시아인까지…
내 아버지를 보면 홑꺼풀 눈두덩은 전형적인 몽골리안이지만, 전형적인 코카서스 인종의 코(밑에서 봤을 때 콧구멍이 삼각형 형태를 이루는 코)를 갖고 계신다. 유전적으로만 보면 동서양 혼혈이다. 그치만 유교적인 문화권에서 성장한 남양 홍씨 토홍계 대호군파의 자손으로, 토종 한국인이다(반면 나는 외꺼풀, 두툼은 눈두덩, 동그란 코와 콧구멍, 넓은 어깨, 긴 팔, 긴 허리, 두꺼운 허벅지 등 순수 몽골리안의 몸이다. 아버지의 형질이 밀려난 걸 보면 확실히 한국인의 유전자 풀에 몽골리안의 비율이 높은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국인은 하나의 민족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동일한 문화체계에서 정체성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김치를 먹고, 밥이 없으면 허전하고, 우랄 알타이어 계열의 한국어를 쓰고, 하필이면 어순이 정반대라 영어를 배우기 위해선 머리를 싸매야 하고, 한(恨)의 정서를 공유하는 민족이다.
우리가 국가라는 운명공동체를 영위하는 이유는 우리가 문화적으로 같은 민족(people)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대한민국을, (현재 다문화사회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기본 바탕은 단일민족국가라고 불러도 된다.
<단일혈통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대부분의 경우 환상에 불과하다. 아시아의 수많은 북방 유목민족들 – 여진(만주)족, 투르크(돌궐, 터키)족, 위구르족, 몽골족, 유연족, 타타르족, 거란족 등은 저마다 자신들의 조상이 흉노(훈)족이라고 믿었다. 이들은 서로 자신들이야말로 흉노족의 직계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흉노족이야말로 순수한 기마민족의 이데아로 추앙받았으니 그런 주장을 할 만도 했다.
그런데 각자 다른 시기에 다른 지역에서 출현한 이들 종족 중에, 흉노족의 직계 후손은 없다. 물론 흉노족의 피가 여기저기 튀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흉노족의 직계 후손집단이 아시아에 있었다면 왜 테무진 시대에 흉노라는 이름이 이 지역에서 사라져 있었단 말인가.
혈통보다 강력한 것이 바로 문화다. 기마민족들이 저마다 흉노족을 위대한 조상으로 떠받든 이유는 <흉노족이 정립한 삶의 방식>을 전수받아 생존했기 때문이다. 빠르게 조립/해체가 가능한 천막 위주의 주거문화, 말 위에서 활을 쏘는 싸움법, 활과 화살의 구조, 네르제(사냥감 여러 마리를 원형으로 포위하여 한번에 모두 포획하는 사냥법) 등등.
사실 부족이나 씨족 등의 개념엔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 예를 들어 옹 칸이 이끌던 커레이트족은 시베리아계 몽골리안, 위구르족, 투르크족 등이 뒤섞인 부족이었다. 종족보다 훨씬 작은 개념인 부족에 다양한 종족이 있다는 것 자체가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물론 부계중심사회였기 때문에, 계속해서 공급된 모계혈통이 지워진 이유도 있으리라. 또 이런저런 씨족과 부족들이 서로 연합하고 정복하고 흡수되면서 새로운 부족으로 진화한 탓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렇다면 왜 ‘부족의 혈통’을 가지고 죽자고 싸워야 하는가?
테무진은 개인의 이익이 아닌 이익공동체, 즉 사회의 이익을 위해 싸웠다. 구성원 모두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 사회는 계속 다른 울루스의 백성을 흡수하면서 덩치를 키워가고 있었다. 그 진화의 끝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평화와 통합일 수밖에 없다.
혈통으로 나눠진 지배집단이 존재한다면 언젠가 그 사회는 다시 분열할 수밖에 없다. 쿠데타가 일어나거나, 다시 혈통 단위로 이리저리 쪼개진다.
‘지배종족의 강력한 힘’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가 아니라, 그런 물리적인 지배력이 없어도 하나인 사회. 원래 우리는 하나라서, 우리 안에선 서로 적이 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는 사회. 그런 사회를 위해서 테무진은 전에 없던 새로운 개념을 발명했다. 그게 ‘모전 벽의 사람들’이다. 어느 종족의 얼굴을 가지고 있든, 어느 부족 출신이든, 우리는 모두 게르에 살면서 동일한 문화를 누리는 다같은 사람들이 아닌가?
초원 구석에서 성장한 문맹의 사내 테무진에겐 <문화>니, <공동체>니 하는 형이상학적 개념이 없었다. 자신이 아는 어휘를 애써 끌어와 ‘모전 벽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 소박한 표현이 가리키는 바는 명확하다. 테무진은 근대민족국가가 출현하기 이전에, 근대적 의미의 ‘민족(people)’을 최초로 이해하고 구상한 인물이다. 그것도 아무런 배움 없이 혼자서. 너무나 뛰어난 발상이라 어안이 벙벙할 정도다.
히틀러나 무솔리니나 또 일본 제국주의자들이나, 19~20세기에 ‘민족’이라는 개념을 잘못 해석한 양반들이 꽤 된다. 이들이 ’우리 민족의 순수한 피’에 집착해 극렬한 국수주의에 매달리다가 실패한 이유는 실제로는 문화공통체인 ‘민족’을 ‘단일혈통’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물론 고의적인 오해도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지만.
테무진이 태어났을 때, 몽골은 조그만 부족의 이름이었다. 그가 죽을 때 몽골은 ‘모전 벽의 사람들’을 대표하는 말이 되어 있었다. 이런 사람이 출신 혈통에 따른 차별을 허용할 리가 없다.
테무진 울루스에 평등주의와 통합정책이 가능했던 건, 수많은 책과 영상물 등이 함부로 설명하듯이 그가 싸움을 잘하는 반면 ’인심은 아주 넉넉한’ 사나이 중에 사나이어서가 아니다. 초원에 불어닥친 혁명은 테무진이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내고, 그걸 대중에게 설득시킬 수 있는 천재적인 정치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이 사십이면 자신의 믿음을 흔들리지 않고 지킬 수 있는 불혹이라 했다. 테무진은 불혹을 제대로 맞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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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냥 불혹이 아니라 수컷의 불혹이다. 테무진이 이국적인 미녀자매의 자태에 맛이 훅 가있던 때, 테무진의 막내아들 톨루이는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타타르 대학살이 마무리될 무렵이었다. 톨루이는 할머니 헐룬의 게르에 놀러가 있었다. 원래 할머니는 어린 손주를 이뻐하는 법이다.
마침 헐룬의 게르에는 ‘네 마리 말’ 중 하나인 보로쿨의 아내 ‘알타니’가 마실나와 있었다. 보로쿨이 십대였던 걸 생각해보면, 아내가 남편보다 두세살 연상인 초원의 관습상 알타니는 십대 후반이거나 스무살 정도였을 것이다.
모든 성인 남자를 죽인다고 해도, 수학적으로 100%를 지상에서 없앨 순 없다. 당연히 몇몇은 도망간다. 대학살에서 운 좋게 살아남아 탈출한 타타르 전사 하나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카르길 시라.’ 카르길 시라는 비수를 품고 헐룬의 게르 안에 들어갔다. 몽골족에 대한 타오르는 복수심에 사로잡힌 채…
자신의 부족이 지상에서 증발한 모습을 본 카르길 시라는 지상에서 가장 고독한 외톨이였으리라. 그는 일단 헐룬에게 거지인 척 연기를 했다.
“저는 적선을 구하는 자입니다.”
헐룬은 초원의 대모답게 겁을 먹기는커녕 동정심이 들었는지, 먹을거리를 좀 내어주기로 했다.
“적선을 구하는 자라면 거기 앉거라! 주린 배를 채우게 해 주마.”
카르길 시라가 복수의 기회를 노리며 자리에 앉으려는 그때, 밖에서 놀고 있던 다섯살배기 톨루이가 헐룬의 게르로 뛰어들어왔다.
“할머니~”
카르길 시라가 바보가 아닌 한,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있는가? 그는 이미 삶에는 아무 미련이 없었다. 테무진에게 고통을 주는 것만이 중요했던 카르길 시라는 톨루이를 번쩍 들어 겨드랑이에 끼우고 게르를 뛰쳐나갔다. 한 쪽 손으로는 품안의 칼을 더듬더듬 뽑으며…
“아, 아이를 죽인다!”
헐룬은 여장부였지만, 사랑하는 손자가 죽게 될 위기에 처하자 얼어붙은 채 소리를 지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알타니는 보통 여자가 아니었다. 어린 신부 알타니는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뛰쳐나갔다.
이럴 때 영화속에서는 여자는 남자영웅의 구조를 기다리는 가냘픈 존재거나, 화려한 발차기를 자랑하며 남자를 제압하는 여전사가 된다. 당연히 현실의 여성은 그 중간쯤 어디에 있다. 알타니는 리얼액션을 선보였다. 그녀는 카르길 시라를 따라잡아, 톨루이가 칼에 찔리기 직전에 납치범의 머리끄댕이를 온 힘을 다해 졸라 잡아당겼다!
한 손엔 칼, 한 손엔 톨루이를 든 채 고개가 홱 젖혀진 카르길 시라는 순간적으로 어찌할 수가 없었다. 알타니는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카르길 시라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 결에 톨루이를 노리던 칼이 땅에 떨어졌다.
“왕자님 살려! 여기 이 미친놈이 톨루이를 죽이려고 한다아아!”
알타니의 외침은 헐룬의 게르 근처에 있던 젤메의 귀에 들어갔다. 젤메는 ‘제테이’라는 남자와 소를 도살하고 있었다. 젤메도 제 집이 있었을 텐데… 울루스 전체의 2인자였던 젤메가, 다른 곳도 아니고 보스인 테무진 가족이 머물던 오르도 안에서 직접 소를 잡는다? 평상시라면 뭔가 어색하다.
소는 초원에서 제사에 자주 쓰던 가축이다. 젤메는 울루스 전체가 참여하는 잔치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아니면 이미 잔치중이었거나. 타타르 정벌을 기념하는 잔치였음이 분명하다.
젤메와 제테이는 한 사람은 도끼를, 한 사람은 칼을 들고 손에 온통 소의 피를 묻히고 있었다. 두 사람은 칼과 도끼를 든 채 알타니가 있는 곳으로 뛰어왔다. 카르길 시라 이 남자, 운도 지지리 없다. 젤메와 제테이는 알타니에게 머리끄댕이가 잡혀 허우적대는 카르길 시라를 그자리에서 칼과 도끼로 쳐죽였다.
소피가 묻은 도끼로…
세 어른은 존경하는 보스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다급히 움직였지만, 막상 상황이 종료되자 톨루이는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 알타니와 젤메, 제테이는 애를 내팽개치고 누가 왕자의 목숨을 살리는 데 공을 세웠는지 논쟁에 들어갔다. 젤메와 제테이가 선빵을 날렸다.
“알타니, 우리가 마침 근처에서 소를 잡고 있지 않았다면 어찌 됐겠소. 톨루이는 물론이고 당신도 위험해졌겠지. 머리끄댕이를 잡고 있었던 건 참 잘한 거지만, 결과적으로 상황은 남자인 우리가 정리한 거 아니오. 솔직히 여자인 그대가 이 미친놈을 붙잡고 있는 것 외에 뭘 할 수 있었겠소? 테무진 형님의 아들을 살린 공은 우리 둘이 나눠가져야 할 것 같은데? 응?”
이정도 마초이즘에 가만있을 알타니가 아니었다. 힘이야 젤메와 제테이만 못했겠지만, 알타니는 여자다. 말싸움은 훨신 더 잘한다. 게다가 알타니는 성격도 드셌다.
“득달같이 달려나가 이놈이 톨루이를 해치지 못하게 막은 건 납니다. 내가 외치지 않았으면 당신들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나 있었겠어요? 카르길 시라를 붙든 것도 나고, 아이를 해치지 못하게 칼을 떨어뜨린 것도 나에요. 아저씨들은 나중에 와서 상황정리나 한 거지. 안 그래요? <카르길 시라를 죽인 것>과 <톨루이를 살린 것>중에 어느 쪽이 더 중요하죠?”
보통 아이들은 어른들의 일에 무관심하지만, 이해력이 빠른 애들도 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톨루이가 알아챘다면, 이 어린애 참 황당했을 것이다. 자기는 죽다 살아났는데 어른 셋이서 서로 잘났다고 싸우고 있으니…
… 재밌는 건 이 논쟁에 아버지인 테무진도 끼었다는 거다. 하긴 심판 노릇을 하려면 그럴 수밖에. 그런데 테무진도 남자인지라, 알타니의 언변을 당해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테무진은 알타니의 손을 들어줬다.
“여기서 정리하자. 우리 톨루이를 살린 건 알타니다!”
테무진 가족은 알타니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몽골 제국 전체, 더 나아가 세계사 역시 알타니의 머리끄댕이 초식에 상상할 수 없는 영향을 받았다. 훗날 톨루이의 아들들이 유라시아 대륙을 분할통치하게 되기 때문이다.
6
타타르 정벌이 수습되는 동안, 테무진에겐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옹 칸에게 또다시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테무진은 타타르를 정벌하는 계획과 일정을 동맹자인 옹 칸에 충실히 전달했다. 이 말은 타타르를 정벌하면서 얻은 전리품도 나누었다는 얘기다. 물론 테무진 혼자 싸웠기 때문에 1:1로 나누었을 리는 없다. 하지만 타타르는 부유했다. 옹 칸은 상당한 재물을 얻었음에 틀림없다. 이 재물은 흔들리는 그의 자리를 유지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테무진이 타타르와 싸우고 있던 그때, 옹 칸은 이때다 싶게 초원 서쪽에서 재기를 벼르고 있던 메르키트를 치러 갔다. 테무진에겐 알리지도 않고 말이다.
옹 칸은 ‘이기는 전쟁’을 기획해야 했다. 나이만에게 당한 패배, 거지꼴 방랑 사건 등으로 위신과 지지율이 땅에 떨어졌다. 가치있는 군주임을 증명해야 했다. 약탈품이 부족으로 흘러들어오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었다. 옹 칸은 개중에 만만한 메르키트를 골랐다.
메르키트는 테무진과 옹 칸에게 공동의 적이었다. 메르키트를 상대하려면 당연히 같이 행동해야 했다. 헌데 그러려면 테무진이 옹 칸을 콘트롤하게 된다. 옹 칸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던 반면 테무진은 초원 중앙은 물론 타타르 정벌로 동쪽까지 장악했다. 옹 칸은 더이상 테무진에게 밀리지 않으려면 혼자 승리하고, 혼자 승리의 결실을 독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옹 칸은 약탈한 물자와 사람을 테무진과 나누지 않는 최악의 선택을 했다. 옹 칸은 메르키트 반란군 수장이었던 톡토아 베키의 큰아들을 죽이고, 또다른 아들 코토카 베키와 칠라온 베키를 포로로 잡았다. 톡토아 베키의 부인과 딸들도 사로잡았다. 이 정도로 대승을 거뒀으니 막대한 물자를 새로 얻었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테무진과 아무것도 나누지 않다니.
이 일은 옹 칸의 명성을 땅에 떨어뜨렸다. 테무진은 테무진대로 잔뜩 열이 받았을 터. 하지만 테무진은 일단 참았다. 아직은 옹 칸이 필요했다. 동맹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미지였다. ‘먼저 약속을 깨지 않는 사람’이 되는 걸로는 부족했다. 테무진은 끝까지 상대를 믿는 사람, 결코 사람들의 기대를배신할 것 같지 않은 우직한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테무진은 자무카와 대비되는 자신의 선량한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메르키트족에게 승리를 거두면서 몸을 추스른 옹 칸은 이제 복수를 갈망했다. 나이만에 한 방 먹여주지 않으면 제대로 된 칸으로 설 수 없었다. 테무진은 화를 꾹 참고 나이만 원정에 동참해주기로 결정했다. 다시 한 번 테무진-옹 칸 연합군이 결성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테무진이 나이만 원정을 결심한 건,옹 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더 주고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서가 다가 아니었다. 전쟁은 위험한 도박이다. 그런 이유로 전쟁을 벌이는 건 백성들에게 무책임한 짓이다.
나이만은 이미 테무진의 적이었다. 제1군주 타양 칸의 동생 부이룩 칸이 쿠이텐 전투에서 자무카의 편을 들었었다. 원한이 생긴 만큼 장차 충돌이 불가피하다. 실력과 자신감이 는 테무진은 때를 기다리지 않고 때를 만드는 편을 택했다. 그러면서도 상대를 알타이 산맥 기슭을 통치하고 있던 부이룩 칸으로 한정했다. 나이만은 통째로 상대하기엔 너무 사이즈가 큰 상대였다.
또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테무진은 타타르 생존자들을 흡수한 직후였다. 인구가 몇 배로 늘어난 반면 전사의 수는 그대로였다. 이대로라면 성인남성들의 허리가 휠 판이다. 전쟁이 가져다줄 물자가 급하게 필요했다.
타타르 원정을 마친 게 1202년 가을이다. 그런데 바로 그 해 겨울에 군대를 조직해 나이만으로 출정했다. 첫 번째 나이만 원정의 연대는 <몽골비사>와 <라시드 앗 딘>의 연대가 다르다. 여기서는 <몽골비사>를 기준으로 기술한다. <몽골비사>에서 기록된 순서를 따른다면, 테무진은 불어난 인구를 굶기지 않고 부양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7
부이룩은 칸은 형 타양 칸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애초에 나이만을 분할통치하게 된 것도 둘 사이에 다툼이 있어서였다. 두 사람의 아버지는 ’이난차 빌케’ 칸. 이 양반의 후궁 중에 눈에띄게 아름답고 젊은 여인이 있었나보다. 이난차 빌케 칸이 죽자마자 두 형제는 예쁜 계모를 차지하기 위해 빛의 속도로 갈라졌다. 둘 다 벼르고 있었단 얘기다. 어릴 때부터 연정을 품고 있었던 모양이다.
피가 직접적으로 섞이지 않았으니, 아버지의 여자라 할 지라도 아들이 물려받는 건 초원에서 자연스러운 일. 그런데 후궁이 누구의 차지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두 형제는 다시는 화해하지 못했다. 타양 칸은 초원의 평원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고, 부이룩 칸은 알타이 산맥 기슭을 다스리고 있었다. 국어시간에 ‘한국어는 우랄 알타이 어족’ 할 때의 그 알타이다.
알타이 산의 전경
산기슭은 평원에 비해 인구가 모이기 힘든 지형이다. 초원만큼 풀과 가축이 풍부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지형이 다른 만큼 가축의 비율도 달라진다.부이룩 칸이 다스리는 지역은 아무래도 염소와 소, 야크의 비율이 높았을 것이다. 반면 타양 칸은 훨씬 많은 수의 양을 확보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타양 칸과 부이룩 칸은 느슨한 동맹관계와 경쟁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타양 칸의 부와 권력이 더 컸긴 하지만, 그는 이난차 빌케 칸의 적장자였다. 나이만 전체가 응당 그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동생과 나라를 나눠가지고 있었다는 건, 그의 역량이 평균 이하였음을 보여준다(실제로 타양 칸은 문제가 많은 군주였는데, 이 얘기는 천천히 하자.).
겨울의 출정… 테무진과 옹 칸은 나이만 땅에 들어가 부이룩 칸의 군대가 있는 곳까지 가면서도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았다. 타양 칸이 동생의 운명에 심드렁했다는 얘기다. 아마 타양 칸과 그의 어머니 구르베수, 황태자 ‘쿠출룩’은 부이룩 칸이 어찌되나 함 보자는 심산이었으리라.
테무진과 옹 칸은 알타이 산기슭의 ‘소콕 오손’에서 부이룩 칸의 군대와 조우했다. 소콕 오손은 ‘차가운 물’이라는 뜻이다. 이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현재로써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아래 알타이 산기슭을 찍은 사진을 보면 왜 ‘차가운 물’이라는 지명이 붙었는지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때는 겨울이었다.
부이룩 칸의 군대는 연합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옹 칸이 신의가 있건 없건, 그와 테무진은 한 두 번 손을 잡은 사이가 아니다. 부이룩 칸은 군사적 기량이 절정을 향해가던 테무진과 회전(會戰)으로 맞서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에게도 나름의 작전이 있었다.
이렇게 되면 홈그라운드 어드벤티지를 이용하는 게 상책이었다. 때는 겨울이었다. 침략군이 고생하는 계절이다. 여기에 거친 알타이 산의 지형을 활용해 게릴라전을 펼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적을 이기진 못해도, 지쳐서 돌아가게 할 수는 있다. 부이룩 칸은 군대를 알타이 산으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테무진은 이미 속도전의 대가였다. 그는 드넓은 초원에서 상대와 아슬아슬 거리를 유지해가며 싸워왔다. 또 테무진의 부하들은 거친 초원에서 굶주려가며 악마처럼 싸워온 인간들이다. 물자가 풍부하고 문화수준이 높은 나이만 병사들보다 인내심이 강하고 집요했다.
사람뿐 아니라 말도 달랐다. 몽골 말, 즉 초원 중앙-동쪽의 말과 서쪽인 나이만의 말은 종자가 달랐다. 나이만 군대는 아랍쪽 피가 섞인 중앙아시아 종자의 말을 도입해 사용했다. 이 종류의 말은 근육이 잘 잡혀있고 덩치가 좋다. 그래서 단거리를 순간적으로 뛰는 데 유리하며, 무거운 무장을 한 사람도 버텨낼 근력이 있다.
반면 몽골 말은 체구가 작고 근육도 도드라지지 않아서 겉으론 볼품없지만, 인내력과 지구력에서는 지구상 어떤 말도 따라갈 수 없다. 몽골 말은 산소농도가 낮은 평균해발 1600m의 몽골초원에 적응하며 진화한 동물이다. 사람으로 치면 마라톤 선수에 해당한다. 경이로운 폐활량을 자랑하기 때문에, 산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더 유리해진다.
테무진과 옹 칸의 군대는 주저하지 않고 부이룩 칸을 쫓아 알타이 산으로 들어갔다. 연합군이 가까운 거리를 집요하게 유지하며 추격하자 부이룩 칸의 알타이 산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부이룩 칸은 어쩔 수 없이 알타이 산을 넘어 다시 평지로 돌아왔다. 그의 군대는 산밑의 ‘우룽구’ 강줄기를 따라 퇴각하기 시작했다. 부이룩 칸은 홈그라운드에서 이렇게까지 쫓길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에 보이는 우룽구 강의 현재 이름은 ‘울룽구르’ 강이다. 오늘날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흐르는 강이다.
연합군과 수비군 모두 ‘척후’를 운영하고 있었다. 척후란 본대에서 떨어져나와 적의 위치와 동태를 파악하며 본대와 통신하는 소규모 부대를 말한다. 쫓고 쫓기다 보니 연합군의 척후는 아군의 앞에서, 부이룬 칸 군의 척후는 아군의 뒤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거기다 두 본대가 워낙 가까운 거리에서 이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양측의 척후부대가 만나는 일이 벌어졌다.
부이룩 칸 군의 척후부대를 지휘하던 나이만 장군 ‘예티 토블록’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물러서지 않고 싸우면? 그러면 결판이 나기도 전에 테무진과 옹 칸의 본대에게 따라잡힐 수 있다. 그러면 척후부대원 모두가 절멸이다. 그렇다고 본대가 있는 곳으로 후퇴하자니 적의 길앞잡이 노릇만 하는 꼴이다.
예티 토블록은 본대도 살리고 척후부대도 살리기 위해서 가장 현명한 판단을 했다. 강줄기 길을 포기하고 말머리를 돌려 산으로 퇴각한 것이다. 척후부대 역할을 포기한 거지만, 뒤따라오는 적의 척후부대도 기능을 상실하긴 마찬가지다.
역시나 연합군의 척후부대는 예티 토블록을 추격해 들어왔다. 예티 토블록에게는 추격을 뿌리치고 난 후의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예티 토블록은 더럽게 운이 없었다. 하필이면 도망가는 와중에 말안장을 말에 고정하는 끈이 끊어진 것이다!
말에서 떨어진 예티 토블록은 그자리에서 붙들렸다. 연합군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적은 자기네 척후의 통신을 기다리고 있을 터. 그런데 그 척후병들은 지금 산 속에서 포로가 되거나 도망간 상태다. 또한 포로들을 통해 적 본대의 위치를 더 자세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테무진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이동해 울룽구르 강의 하류, 강물이 모여 형성된 호수에서 마침내 부이룩 칸을 따라잡았다.
연합군은 도망에 지친 적군을 궤멸시켰다. 부이룩 칸도 전사했다. 부이룩 칸이 지배하던 나이만의 반, 실제로는 1/3~1/4 정도가 테무진과 옹 칸의 수중에 떨어졌다.
나이만은 초원에서 가장 부유한 세력이었다. ’궁정’과 ‘조정’을 갖고 있었다. 행정체계가 있었단 얘기다. 위구르인 학자를 초빙해 재상을 맡길 정도였으니 여타 부족과는 수준이 달랐다. 인구도 압도적으로 많았다. 거기다 실크로드 무역로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 교역을 통해 쌓은 부는 중국과 아라비아에서 보기엔 보잘것 없었을지 몰라도 테무진의 부하들에겐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것이었다.
테무진 울루스와 커레이트족의 기준에서는 엄청난 이윤이 발생한 셈이다. 연합군은 가축은 물론 옮길 수 있는 건 모조리 약탈했을 것이다. 이제 신나게 집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나이만 조정은 연합군이 몸성히 돌아가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 부이룩 칸이 그토록 허무하게 당할 줄도 몰랐겠거니와, 이제 테무진-옹 칸 연합군은 부이룩 칸의 적이 아니라 나이만 전체의 적이었다. 나이만에서 쓸어간 건 나이만 땅에 내려놓고 가야 했다. 이건 국가적인 문제였다.
부이룩 칸이 전사하자, 나이만의 진짜 에이스 ‘쿡세우 사브락’ 장군이 움직였다.
8
백전노장 쿡세우 사브락은 <게섰거라 도둥놈들아아~>하며 연합군의 뒤를 쫓는 평범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추격하다 놓치거나, 기껐해야 적이 흘린 약간의 약탈품만 줍고 돌아왔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테무진-옹 칸 연합군은 싸움에서 지더라도 걍 고향으로 도망가면 그만이다.
쿡세우 사브락은 대담하게도 대군을 이끌고 ‘전격 행군’을 시도했다. 연합군은 전투가 끝난 마당에 급하게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 거기다 약탈품까지 딸려 있으니 속도가 느린 건 당연지사. 쿡세우 사브락은 나이만 국경을 넘어 알아채지 못하게 우회해서 적을 앞질러갔다. 그는 적의 홈그라운드인 몽골초원 중부에 다다랐다.
쿡세우 사브락은 ‘바이다락’ 강(현재의 바이드락 강)의 물줄기가 만나는 곳에서 전열을 갖추고 적을 기다렸다. 연합군이 나이만의 재산을 가지고 내빼지 못하도록 강줄기를 바리케이트 삼은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반드시 쿡세우 사브락을 넘어야 한다.
<적당한 장소를 먼저 골라 기다리다가 적을 맞아 충분히 생각하고 대비할 기회를 주지 않고 싸운다.> 회전(會戰)에서 승리하는 기본이다. 쿡세우 사브락, 역시 초원 서쪽의 에이스다운 기동이었다.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테무진과 옹 칸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던 적의 대군과 맞닥뜨리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옹 칸이 많이 놀란 것 같다.
이렇게 된 이상 싸우지 않고 별 수 있는가? 테무진과 옹 칸은 그자리에서 나이만 원정전 2차전을 결의했다. 그러나 중부 연합군과 나이만군이 만났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진 후였다. 적당한 때와 장소를 고르는 회전의 특성상, 이럴 때는 날이 밝을 때까지 휴전하는 게 일반적이다. 연합군과 쿡세우 사브락도, 날이 밝고 싸우기로 하고 일단 잠자리를 폈다.
밤. 옹 칸은 번뇌에 휩싸이게 된다. 그는 이미 막대한 약탈품과 가축을 챙겼다. 이걸로도 성공이다. 이미 판돈을 솔찬히 긁어모았다. 강적인 쿡세우 사브락과의 싸움에 베팅할 필요가 있을까? 이대로 싸우지 않고 판돈을 챙겨 커레이트로 돌아간다면 흔들리는 왕좌를 단단히 고정시킬 수 있을텐데…
하지만 어떻게 도망간단 말인가? 물론 테무진을 배신하면 된다. 테무진을 바리케이트삼아 쿡세우 사브락에게 던져주고, 나는 싹 빠져나가는 거다. 하지만 테무진을 또다시 배신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양심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테무진이 다시는 날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쿡세우 사브락은 역시 무섭다.
옹 칸은 테무진에게 용서받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이기적인 습관은 양심을 이긴다. 옹 칸은 이미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판단력을 잃어가고 이었다. 그는 생애 가장 비겁한 결정을 내린다. 테무진을 버리고 혼자 튀기로 결심한 것이다.
동틀녘이 되자 테무진과 그의 부하들이 기상했다. 결전의 날이다. 그런데 옹 칸 진지가 너무 조용하다. 분명히 진지 가득 불이 피워져 있는데… 설마 아직도 다들 자고 있는 건가? 아니었다. 옹 칸과 그의 군대는 야영지에 테무진의 눈을 속이기 위해 야영지에 불을 피워놓은 채, 밤사이 소리없이 몰래 도망간 것이다!
테무진은 충격과 분노에 몸을 떨었다.
“이것들이 우리를 ‘툴레시’ 삼고 있다!”
‘툴레시’의 뜻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먼저 제사용 음식이라는 설이 있다. 제사를 지낼 때는 신성하지만, 의식이 끝나고 난 후에는 먹어치우거나 내다버리는 1회용 음식 말이다. 땔감이라는 뜻도 있다. 그냥 땔감이 아니라 음식을 하면서 나오는 동물의 지방을 말한다. 불에 던져 불쏘시게로 쓰는 허드렛기름이라 보면 된다.
한 번 쓰고 버리는 1회용 바리케이트. 이게 테무진이 말한 ‘툴레시’의 뜻이었다. 테무진의 굴욕은 끝나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나이만은 인구가 많다. 쿡세우 사브락이 이끄는 군대도 어마어마한 수였을 것이다. 옹 칸이 떨어져나가 전력이 반토막이 난 지금, 이대로 쿡세우 사브락과 결판을 낼 수는 없었다. 잘못하면 역관광을 당하는 수가 있다.
또한, 양측이 싸우는 것이야말로 옹 칸이 가장 바라는 바였다. 그의 안전을 위해 부하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트리는 건 말이 안 된다. 테무진은 굴욕을 삼키고 군대를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전투중이 아니었기 때문에 퇴각이라고 할 순 없지만, 도망가는 기분을 없애진 못했을 것이다.
쿡세우 사브락도 이에 뒤질세라 군대를 이동시켰다. 한편, 메르키트의 군대가 커레이트족에 억류되어 고통을 겪고 있는 여왕과 왕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옹 칸의 군대를 몰래 추격하고 있었다. 구원군의 지휘자는 톡토아 베키였다(여왕과 왕자는 그의 처자식이다.). 그리고…
글타. 이제 이 인물이 다시 등장할 때가 됐다. 쿠이텐 전투에서 패배한 후 세력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추종집단을 규합한 자무카. 그는 이 상황을 모두 관찰하고 있었다. 자무카는 홀연히 나타나 도망중인 옹 칸의 군대를 깜짝 방문했다.
위험에 빠진 테무진, 부활을 꿈꾸는 천재 자무카, 배신자 옹 칸, 조국의 백성과 재산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적지에 뛰어든 쿡세우 사브락, 그리고 상처입은 늙은 전사 톡토아 베키…
배신과 복수로 점철된 1202년(혹은 1203년 초) 몽골초원의 겨울. 과연 이들에게 봄은 올 것인가? 1203년은 이들에게 어떤 해가 될 것인가? 두둥~
(다음편 ‘잘못된 만남’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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