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8일 목요일

[울림과 스밈] 스마트폰에 더 흔들리는 출판 생태계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이 우리의 일상을 호들갑스레 휘젓는다. 가히 스마트폰 시대랄까. ‘내 손안의 컴퓨터’가 책시장에도 들어왔다. 인터넷서점들의 공세 앞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오프라인 기반의 대형 서점들이 ‘스마트한 책 쇼핑’을 권한다. 서점 반디앤루니스가 지난달 21일 ‘북셀프 서비스’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며 내세운 모토다. 스마트폰을 활용한 온·오프 통합 서비스란다.
반디앤루니스는 서울·일산·창원에 10개 매장을 갖춘 오프라인 기반 서점이다. ‘북셀프 서비스’의 핵심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온라인 할인가격으로 책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독자는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해 스마트폰으로 책 값을 결제한 뒤 그 매장에서 바로 책을 받거나, 어디서든 인터넷 반디앤루니스에 접속해 결제한 뒤 근처 매장에서 책을 받아갈 수 있다. 이 서점의 북셀프 서비스는 국내 최대 서점 교보문고가 지난해부터 시작한 온·오프 통합 ‘바로 드림’ 서비스의 진화된 형태라 할 수 있다. ‘바로 드림’은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주문하고 1시간 뒤에 인근 오프라인 교보 매장을 찾아가 책을 받는 서비스다. 이 서비스로 교보문고는 전국 16개 오프라인 매장 중 최대 판매액을 기록한 매장에 맞먹는 매출을 올렸다.
예스24·인터파크·알라딘 등 인터넷서점들은 책을 주문하면 바로 그날 배달해 주는 당일 배송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확대해왔다. 주문 즉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강점을 내세워온 오프라인 기반 서점들은 목줄이 탔다. 반디앤루니스·교보문고 등 오프라인 기반 서점들의 ‘스마트한’ 온·오프 통합서비스는 인터넷서점의 당일 배송, 할인판매 공세에 대한 반격인 셈이다.
교보문고·반디앤루니스 등 오프라인 서점은 ‘문화와 지식의 유통자’라는 명분 때문에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정가대로 책을 판매해왔다. 교보문고는 온·오프 통합 판매 서비스에 공식적으로 스마트폰을 활용한 결제를 도입하지 않고 있지만, 실제로는 독자들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책을 싼값에 결제한 뒤 바로 받아가는 행태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독자들로선 싼값에 책을 살 수 있다고 마냥 환영할 일이 아니다. 도서정가제를 무너뜨린 할인판매는 장기적으로, 다양하고 좋은 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출판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점의 할인판매는 출혈 저가 공급을 강제하여 출판사들은 갈수록 생존이 어려워진다. 더욱이 현행 도서정가제는 ‘무늬만’ 정가제다. 발간 18개월이 지난 구간 도서는 할인제한 규정이 없는데다 신간의 경우도 사실상 정가의 19%까지 할인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무늬만 정가제’인 현행 도서정가제 체제는 동네·지역서점을 줄도산으로 몰아넣어 다양한 좋은 책이 유통될 수 있는 책문화 거점들을 앗아갔다. 싼값 좋아하다가 읽을 만한 책들이 아예 생겨나지 않을 수도 있다. 출판 생태계의 온존을 위해 출판계가 완전 도서정가제 실시를 주장하는 이유다.
온·오프 통합 판매 서비스는 명백히 편법이지만, 신기술의 발전이 늘 새로운 판매기법을 창출해 왔다는 점에서 예고된 것이다. 유통이 제조업을 쥐락펴락하다 고사시키는 악순환이 문화와 지식 생산의 ‘오래된 미래’라 할 출판 지형에서도 되풀이되는 상황이다.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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